>
| 고난 속에 감추어진 은혜 | 정명훈 | 2026-02-28 | |||
|
|||||
|
소요리문답 27문답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이 어떠한 것이었는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그의 성육신과 비천한 신분으로 나심과 율법 아래 복종하심과 이 생에서의 여러 가지 비참함과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받은 죽음을 받으신 것과 장사되셨으며 얼마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거하신 것이다.” 이 한 문장 안에는 복음의 심장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능력과 영광을 먼저 생각하지만, 교회가 붙들어야 할 복음의 출발점은 영광이 아니라 낮아지심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의 고백이 전제하는 첫 사건은 성육신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이 되셨습니다. 이 사실은 너무 익숙해서 감격이 사라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분이 시간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전능하신 분이 아기의 연약함을 입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겸손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기 비움(케노시스)이며, 구원을 위한 자발적 낮아짐입니다. 예수님은 왕궁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권력자의 아들이 아니라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습니다. 왜 그렇게 오셨을까요? 그분은 죄인들의 자리에 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셔야 가장 깊이 추락한 인간을 붙드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이 초라하고 보잘것없어 보일 때, 우리는 주님의 삶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분의 시작은 화려함이 아니라 낮음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율법 아래 들어오셨습니다. 이는 단지 도덕적 모범을 보이기 위함이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자리에서 완전한 순종을 대신 이루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아담은 실패했지만, 그리스도는 순종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루지 못한 의를, 그분이 완성하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입니다. 주님은 배고프셨고, 피곤하셨고, 오해받으셨고, 배신당하셨습니다. 친구들에게 외면당했고, 군중에게 조롱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픔을 이론적으로 아시는 분이 아닙니다. 직접 겪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눈물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낮아지심의 절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단순한 고통의 도구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쏟아진 자리입니다. 죄 없으신 분이 죄인으로 정죄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대속(代贖)의 승리입니다. 예수님은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완전한 인간의 죽음을 통과하셨습니다. 왜입니까? 죽음의 권세를 안에서부터 깨뜨리기 위함입니다. 그분은 죽음을 피해가신 것이 아니라, 죽음 속으로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소요리문답 27문은 단순한 교리 요약이 아닙니다. 이것은 신자의 위로이며 정체성 선언입니다. 내가 낮아질 때,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억울할 때,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순종이 힘들 때, 그분의 순종을 붙드십시오. 고난이 길어질 때, 무덤 이후의 부활을 기억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며 우리의 겸손의 모범이며 우리의 소망의 시작입니다. 교회는 영광만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분이 낮아지셨기에 우리가 높아졌고, 그분이 저주를 받으셨기에 우리가 복을 받았으며, 그분이 죽으셨기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고백합니다. “주님의 낮아지심이 나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의 설교가 되고, 우리의 삶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