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십니까?” “그리스도께서 한 번에 자기를 제물로 드려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계속해서 간구하심으로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신다.”
소요리문답 25문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을 선명하게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단지 위대한 스승이나 도덕적 모범이 아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이십니다. 구약 시대 제사장은 죄 많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과 하나님 사이를 이어주는 중보자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는 반복되어야 했고, 제사장 역시 죄인이었기에, 그 제도는 완전하지 않았던 겁니다. 이것은 장차 오실 참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였습니다. 그는 자신을 제물로 드리셨는데, 그것도 단번에, 영원히 유효한 제사로 드리셨습니다. 이 놀라운 진리를 설명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히 10:12) 십자가는 반복되는 제사가 아닙니다. 완결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우리의 죄값을 완전히 치르셨기에, 더 이상 우리가 값을 보탤 필요도, 갚아야 할 빚도 없습니다. 이 진리는 목회 현장에서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성도들은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너무 부족합니다.” “또 넘어졌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성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이미 드려진 그리스도의 제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내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그분이 무엇을 이루셨는가’에 기초합니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는 화목의 자리입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롬 5:10) 그리스도는 단지 죄를 용서하신 것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심판을 기다리는 피고인이 아니라,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 화목의 복음을 반복해서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는 정죄의 공동체가 아니라 화목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을 아는 교회는 서로를 향해 은혜의 언어를 사용합니다.
소요리문답 25문답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제사장 사역은 과거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그는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우리는 기도가 막힐 때가 있습니다. 낙심하여 말문이 막힐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대제사장은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십니다. 이 얼마나 큰 위로입니까? 내가 기도하지 못할 때에도, 내가 흔들릴 때에도, 내가 눈물 흘릴 때에도 주님은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 진리를 믿는 성도는 절망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은 혼자 걷는 길이 아닙니다.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붙드시는 중보자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의지하십시오. 자기 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의 단번 제사를 붙드십시오. 담대히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이미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죄책감에 머물지 마십시오. 중보의 삶을 사십시오. 우리에게 중보자가 계시듯, 우리도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제사장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회는 왕 같은 제사장들의 공동체입니다.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제사장 사역을 반영해야 합니다. 소요리문답 25문답은 복음의 심장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은 이미 우리를 위해 자신을 드리셨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흔들리지 마십시오. 우리의 구원은 완성된 제사 위에 서 있습니다. 우리의 미래는 살아 계신 중보자의 손 안에 있습니다.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교회는 결코 무너지지 않음을 믿으시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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