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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 목회가 그리워지는 이유 | 정명훈 | 2025-03-0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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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갈수록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쫓아가기가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물론 발전된 문화의 이기가 우리들에게 주는 편리함과 유익함은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과거 SF 판타지 공상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우리 세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일들이 현실화되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 신기하면서도 그 속도에 두렵기까지 합니다. 저는 최근에 스마트폰이 2년전에도 말썽을 일으켜 새로 교체했는데, 또 다시 똑같은 문제가 발생해서 짜증이 많이 났습니다. 휴대의 편리함을 위해 폴더폰을 계속 사용했는데, 그 폴더가 문제가 되어 폰을 접을 때마다 휴대폰의 전원이 꺼져버리는 현상을 재차 경험하다보니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휴대폰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전화를 걸고 받는 무선 통화로 소통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빠른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스마트폰으로 변형되어지는 과정에서 소형 컴퓨터의 역할을 하다 보니 빛의 속도로 기술력을 강화하기는 하지만 그의 역행하는 수명이 짧아짐으로 인하여 평균적으로 2년 정도의 기준으로 휴대폰을 교체해야하는 웃픈 현실을 맞이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신회사가 왜 2년 약정을 하는지를 이제는 이해가 되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저는 교회와 목회의 현실을 돌아보았습니다. 교회와 목회의 현장에도 세상의 빠른 변화의 기조에 발맞추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속담이 떠오르듯 분수에 맞지 않게 쫓다가 폭망(?)하는 꼴이 되고 마는 것 같아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7,80년대만 하더라도 세상보다 더 재미나고 앞서갔던 그 시절이 무색할 정도로 교회가 세상을 쫓아간다는 것은 언감생심이며, 그럴 수도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조금이나마 보조를 맞추기 위해 몸부림에 가까운 교회의 처절한 움직임이 주객이 전도된 상황으로 전개되고 있지는 않은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세상의 시스템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뀐지도 오래, 이제는 AI시대가 된 지금, 교회의 목회도 이러한 흐름을 쫓다보니 외적인 화려함과 스마트함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뭔가 모르는 허전함 또한 공존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점점 원래의 본질적인 것보다 외형적인 부분이 강조되어지는 이 시대적인 상황과 맞물려 교회 역시 본질적인 말씀과 기도위에 세워진 복음이 다른 화려하게 치장된 프로그램 등에 의해 떠밀려 점점 찬밥대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진단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건물을 짓더라도 반석위에 기초를 잘 세우지 않으면 세상 풍파에 쉽게 무너질 수밖에 없듯이 우리의 믿음의 본질 즉 복음이 허술하게 되면 아무리 화려하고 대단한 것으로 치장하고 쌓는다고 할지라도 공든탑이 무너지듯 조그만한 풍파에도 쉽게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의 뿌리를 내림으로 본질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췄던 아날로그 목회가(?) 그리워진다는 것입니다. 아니 그런 목회를 해야 마지막 때를 살아가고 있는 이 시절에 본질을 왜곡하며 공격하는 이단들에게 미혹되지 않고 신앙을 지키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같은 교회를 세우는 길이라 믿기에 말씀과 기도에 뿌리내린 아날로그 목회에 함께 동참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마 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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