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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목사는 기도중 정명훈 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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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월을 마치고 돌아와 맞닥뜨린 기쁨이 넘치는 공동체는 너무나도 포근하고 따뜻하였지만, 다시 무릎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밖에 없는 저 자신을 보게 되었습니다. 말씀과 기도라는 우리 신앙의 본질부터 다시 다져나갈 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회복하여 공동체로부터 세상으로 사랑을 넘쳐나가게 할 수 있기에 저는 이를 위해 기도의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35장에 야곱이 외삼촌 라반이 있던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다시 돌아온 후 처음 떠날 때 제단을 쌓았던 벧엘(하나님의 집)에서 다시 제단을 쌓았습니다. 20년 전 형 에서를 속여 그의 장자권을 훔치고 떠나면서 꿈속에서 만난 주님께 다음 날 일어나 끝까지 지켜주셔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면 주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는 서원이(창 28장 10-22절) 완전히 이루어지는 마지막 관문이 남았을 때입니다. 자기를 치려고 부하 사백 명을 거느리고 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야곱이 형 에서로부터 목숨을 지켜낼 수 있을까에 대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이 등장하게 되죠. 그런데 32장 24절을 보면 “뒤에 홀로 남았는데, 어떤 이가 나타나 야곱을 붙잡고 동이 틀 때까지 씨름을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씨름을 시작한 것은 야곱이 아니라 '어떤 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야곱이 자신의 기도제목이 이루어지기 위해 먼저 붙들고 하나님께 협박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이 야곱에게 찾아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말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절망하고 낙심하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먼저 찾아와 우리를 붙들고 씨름하십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의지하고 있는 것 마저 하나님이 냉정하게 치십니다. 마치 야곱의 허벅지 관절처럼 마지막으로 힘을 지탱하고 있는 그것마저 하나님이 치신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현재가 그런 상황까지는 아니지만 그러한 상황으로 움직여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나 감정적으로 느껴지고 있기에 기도하는 자리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낙심하지 고 야곱처럼 진심으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갈망하며 간절하게 기도하고자 합니다. 어떻게요? ‘내게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진짜 축복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소떼와 양떼가 아니라 아내들과 자식들이 아니라 하나님 손에 붙들리는 진짜 축복을 구하는 기도 말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한 것처럼 진짜 축복의 삶을 구하고자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축복의 삶을 허락하십니다. 창 32장 30절을 보세요. 야곱은 '내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뵙고도, 목숨이 이렇게 붙어 있구나!' 하면서,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다.”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옛날 ‘벧엘’에서는 꿈에 하나님을 뵈었지만, ‘브니엘’에서는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야곱이 브니엘에서 만나고 체험한 그 하나님과의 깊은 기도의 교제를 하고자 합니다. 저에게 먼저 찾아오신 주님께 진정한 복을 구하고자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주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 축복의 통로를 통해 우리 공동체가 축복의 도가니가 되어지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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