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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목사의 사부곡 | 정명훈 | 2024-09-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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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일 2024년 9월 8일 오후 4시 49분에 사랑하는 아버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습니다. 토요일에 상태가 안좋다는 소식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은 모두 모였고, 호주에 있는 저는 화상채팅을 통해서 아버님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거의 임종직전임을 모든 가족들이 직감하고 마음에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일 새벽에 다시 급하게 연락이 와서 화상채팅을 통해 “힘내시라”고 하며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아무래도 막내아들을 혹시나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급하게 표를 알아보았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저의 몸상태와 생전에 아버지를 뵙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 등의 이유로 오는 것을 만류함에 따라 끝내 한국을 가는 것은 포기했습니다. 일단 주일예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마지막으로 우리 가족들이 함께 아버지와 화상채팅을 하면서 “우리가 갈테니까 힘내세요”라는 말에 아버지는 손으로 휴대폰 화면을 만지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빨리 와라”고 하셨는데, 이 대화 후 30분 뒤에 임종을 하셨습니다. 아마도 우리 가족들과의 대화가 마지막 인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을 떠나 호주에 산지가 26년이 되었는데, 저는 항상 마음에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한국에 가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 염려가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2020년 1월 이후 뵙지 못했던 시간들의 죄송함때문에 이번 연말에 꼭 한국에 가서 오롯이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자 하는 계획을 세웠지만, 결국 저 자신의 이기적인 계획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아버님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 저희들 갈 때까지 지켜주세요”라고 내가 가진 계획 중심으로 기도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도 수술을 하고 회복하는 과정이 겹쳐서 물리적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지만, 좀 더 빨리 뵙고자 하는 열망보다 나의 현 상황에 맞추다 보니 중요한 때를 스스로 놓쳐버리고 끝내 후회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습니다. 이와같은 죄송함에 목놓아 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라는 유행가 가사도 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후회하게 되는 저 자신이 한심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버지를 먼저 보낸 아들된 입장에서 가장 아쉽게 여겨지는 부분중의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에 대한 호칭입니다. 저의 기억속에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아빠라고 부른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저의 자녀들과의 관계속에서는 항상 아빠라는 친숙한 호칭을 사용했는데, 정작 저의 아버지에 대해서는 아빠라는 더 정감이 느껴지는 호칭을 제대로 불러보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습니다. 목사인 아버지의 슬하에 자라다 보니 매우 경직된 분위기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고, 그러다보니 아버지는 엄하셔서 가까이 하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럽게 여겼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고스란히 호칭에서 드러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래서 솔직히 아버지를 뵈러 가면 함께 있는 동안에 꼭 아빠라는 단어를 원없이 사용하고 싶었는데, 그런 저의 여망은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마무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서 임종 전 화상채팅을 하면서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찾아뵙지 못한 죄송함을 전함으로 조금이나마 저의 여망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이라 어색했지만, 더욱 아버지와 가까이 다가가는 것같아 정말 행복했습니다. 이제는 아빠라고 부르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되었지만, 다시 만날 그 날을 소망하며 아직 이 땅에 살아계신 어머니에게는 또다시 이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고 더욱 소통하며 사랑을 드리는 아들이 되어야 겠다는 결단을 하게 됩니다. 아빠에게 못다한 사랑, 엄마 살아생전까지 더욱 풍성하게 하겠다는 다짐을 아빠를 먼저 보낸 막내아들의 사부곡으로 드립니다. 아빠, 정말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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