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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시작과 그 영향 정명훈 2025-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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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문답 제15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인류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신 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로 하여금 타락하게 하신 죄는,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입니다.” 죄의 기원은 인간의 불순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동시에 한 가지 한계를 두셨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기억하게 하는 경계선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선을 넘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단순히 ‘과일을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권위를 거부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교만, 자기 뜻대로 살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을 넘어뜨렸습니다. 그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쯤이야 괜찮겠지”라는 마음, “내가 결정하겠다”는 태도는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마음입니다. 죄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 작고 사소한 불순종에서요. 소요리문답 제16문은 이어서 묻습니다. “아담이 처음 범한 죄로 말미암아 모든 인류가 타락하였습니까?” 대답은 이렇습니다. “아담과 언약을 세우신 것은 그 자신만이 아니라 그의 후손과도 세우신 것이므로, 그가 범죄하였을 때 그 안에서 모든 인류도 범죄하여, 그와 함께 타락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흔히 “원죄”라고 부르는 교리를 설명합니다. 아담은 단지 한 개인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죄는 단순한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죄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해서가 아니라, 아담 안에서 이미 죄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시편 51편 5절의 고백처럼,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요,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 말은 인간이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는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은 인류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죽음, 고통, 분열, 두려움, 수치…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과의 교제 안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 속에서도 구원의 길을 준비하셨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첫 약속,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서막이었습니다. 아담이 불순종으로 세상에 죄를 들여왔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순종으로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5장 19절에서 이렇게 선포합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아담 안에서 인류는 넘어졌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인류는 다시 일어납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날 죄에 대한 감각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죄를 ‘실수’라 부르고, ‘약점’이라 포장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행위이며, 창조주를 거역하는 반역입니다. 작은 불순종 하나가 에덴을 무너뜨렸다면, 오늘 우리의 작은 타협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습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그 길의 끝은 언제나 죽음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자신 안의 아담을 죽이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으로 살아야 합니다. 죄를 미워하고, 은혜를 붙드는 삶이 참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 죄의 결과를 보시면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가죽옷을 입혀 주셨고(창 3:21), 십자가에서 독생자를 내어주셨습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도 하나님은 여전히 ‘찾으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창 3:9) 이 하나님의 음성은 오늘 우리에게도 들려옵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내 품으로 돌아오라.” 아담의 죄로 모든 인류가 타락했지만,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믿는 자가 의롭다 함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죄의 깊이가 아무리 크다 해도,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두 사람의 이야기로 요약됩니다. ‘첫째 아담’과 ‘마지막 아담(그리스도)’. 첫째 아담 안에서 인류는 죽었고, 마지막 아담 안에서 인류는 다시 삽니다. 우리의 삶은 이 두 사람 중 누구 안에 있는가로 결정됩니다. 아담 안에 있는 자는 정죄 아래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생명 안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더 이상 아담 안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의 사람으로 부름받았습니다. 죄를 두려워하지 말고, 은혜를 붙드십시오. 그리스도의 순종이 우리의 불순종을 덮었고, 그분의 의로움이 우리의 수치를 새롭게 하셨음을 잊지 마시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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