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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의 뿌리와 우리의 실존 | 정명훈 | 2025-11-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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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문제의 원인을 주로 환경에서 찾습니다. 가정환경, 사회 구조, 교육 제도, 정치 상황이 인간의 타락과 악행을 낳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환경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외부’가 아니라 ‘내부’, 즉 인간의 타락한 본성에서 찾습니다. 소요리문답 제13문과 제14문은 바로 그 ‘인간의 실존적 상태’를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 줍니다. 13문답은 “인류의 시조가 타락한 상태로 떨어진 것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탄이 뱀의 꾐으로 그들의 마음을 유혹하였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금하신 열매를 먹음으로써 타락했습니다.” 이 문답은 인간의 타락이 단순한 실수나 약점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선택에서 비롯되었음을 분명히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처럼 되라”는 유혹을 통해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건드렸습니다. 그 결과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 중심의 선택을 하게 되었고, 그 한 번의 선택이 인류의 운명을 바꿔놓았습니다. 즉, 죄는 ‘행동’ 이전에 하나님을 떠난 마음의 방향입니다. 겉으로는 선해 보여도,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뜻을 좇는 모든 결정은 결국 타락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14문답은 “죄란 무엇입니까? 죄는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지 않거나 어기는 것입니다.” 이 짧은 문답 안에는 신학적으로 매우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은 죄를 단순히 ‘도덕적 잘못’이나 ‘실수’로 보지 않고,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것, 다시 말해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행위입니다. 즉, 죄는 단지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잘못된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질 때, 모든 영역에서 혼란과 왜곡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죄의 근원입니다. 죄의 핵심은 ‘자기 중심성’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금단의 열매를 먹은 것은 단지 “호기심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감정이 우선일 때, 기도보다 내 계산이 앞설 때, 신앙보다 세상의 논리를 먼저 따를 때, 우리는 이미 ‘하나님 없는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죄는 단지 거짓말, 미움, 탐욕 같은 ‘행동의 목록’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신하여 내가 중심이 되는 모든 태도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이 말씀은 소요리문답 제13, 14문의 진리를 요약합니다. 아담의 타락은 단지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모든 인류의 실패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죄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즉, 죄는 배워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능처럼 내 안에 존재하는 힘입니다. 아이들은 누구에게 배우지 않아도 ‘거짓말’을 하고, 남보다 먼저 가지려는 욕심을 보입니다. 이것이 바로 타락한 본성의 증거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이 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순간, 그 말 자체가 이미 교만이라는 또 다른 죄를 드러냅니다. 죄는 언제나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아담과 하와는 죄를 짓자마자 하나님을 피했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은 오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절규입니다. 죄의 가장 큰 비극은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 떨어진 인간은 생명에서 끊어지고, 결국 스스로를 의지하는 불안한 존재로 전락합니다. 이 단절의 결과가 곧 죽음, 그리고 영원한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그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죄로부터의 회복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소요리문답 제13–14문은 인간의 절망을 말하지만, 그 절망의 끝에는 언제나 복음의 빛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5). 즉, 우리의 죄가 깊을수록, 그리스도의 은혜는 더 깊고 더 넓게 임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나는 괜찮다”는 착각에서 벗어나, “나는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살아간다”는 고백으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죄를 부인하는 사람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사람에게만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합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 이 문답 앞에 서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교만을 버리고, “나는 주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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