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사합니다
- 정명훈 2025.7.6 조회 12
-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먼저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짧고 간단한 이 인사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은 ‘감사’라는 단어를 예절로 여기지만, 성도에게 있어 감사는 예절이 아닌 믿음의 언어입니다. 우리는 감사할 조건이 있을 때에만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범사란 좋은 일뿐만 아니라 어려운 일, 이해되지 않는 일, 아픈 일까지도 포함합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하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감사가 상황을 바꾸는 능력이 아니라, 감사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감사는 현실을 직면하면서도 하늘을 향한 눈을 잃지 않는 태도입니다. 감사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를 드러내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또한 감사는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기억의 능력에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어떻게 구원하셨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매년 절기를 지켰습니다. 특별히 초막절은 추수 후 드리는 절기였으며, 광야에서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억하는 절기였습니다. 다시 말해 감사는 과거의 은혜를 기억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신명기 8장 2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기억이 없는 사람은 쉽게 원망하게 되고, 기억이 있는 사람은 자연히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가 왜 감사하지 못하는가를 돌아보면, 은혜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사소하게 여겼던 작은 도움, 반복되는 일상 속의 공급, 위기의 순간에 찾아온 평안…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손길이었음을 기억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는 입술의 고백으로 끝나지 않고 삶의 열매로 드러납니다. 감사는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종종 “감사합니다”라고 말하지만, 그 말이 진실한 감사가 되려면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과 헌신이 뒤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치셨을 때, 단 한 사람만이 돌아와 감사드렸습니다(눅 17:11–19). 나머지 아홉은 육신의 회복은 받았지만, 영혼의 회복은 누리지 못했습니다. 감사의 고백은 단순한 예의가 아닌, 믿음을 완성시키는 반응이었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고,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렇기에 감사는 단순히 기분 좋은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배의 한 방식이며, 삶 전체를 드리는 순종의 시작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개인의 경건을 넘어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교회는 항상 밝고 따뜻하며, 서로를 향한 격려가 넘칩니다. 반대로 감사가 사라진 교회는 비판과 불평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감사의 언어로 가득 차야 합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마다 늘 감사로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다”는 표현은 그가 사람의 부족함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하시는 일을 먼저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빌립보 교회에게, 골로새 교회에게 모두 감사를 표현하며 그들의 믿음을 격려했습니다. 우리 교회도 그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서로를 향해 “감사합니다”를 말할 수 있는 성도, 사역자들에게 감사하는 성도, 어린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감사로 하나 되는 교회, 그것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맥추감사절을 맞아 이 한마디를 다시금 고백해 봅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난 6개월간의 삶 속에서 주셨던 은혜를 기억하며,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기쁨으로 드리는 이 감사가 우리의 신앙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고, 우리 공동체를 더 따뜻하게 만들며, 하나님의 영광을 더 밝게 드러내는 열쇠가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말이 우리의 입술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의 삶 전체에 스며들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