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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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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사람과 원망의 사람
정명훈 2025.5.24 조회 14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위기와 무너짐의 순간들이 반복되어 왔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을 때,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무너진 성전과 성벽, 그리고 황폐한 예루살렘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사람들의 반응은 둘로 나뉩니다. 한 부류는 절망하며, 현실을 탓하고, 과거를 원망합니다. “우리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왕들이 잘못해서, 조상들이 잘못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버려서”라는 말로 현실을 정당화하고 주저앉습니다. 다른 한 부류는 무너진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고, 이를 회복하고자 마음을 다해 기도하고 행동합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의 왕궁에서 술 관원으로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락함에 머물지 않고, 무너진 예루살렘의 소식을 듣고 눈물로 기도하며 금식합니다. 그는 현실의 절망보다 하나님의 약속과 비전을 붙들었습니다. "하나님이 회복하실 것이다." "무너진 성벽은 다시 세워질 수 있다." 그는 기도의 사람, 회개의 사람, 그리고 행동하는 비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무너진 예루살렘’이 아니라 ‘회복된 예루살렘’이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그 뜻에 자신을 들이며 백성들을 이끌었습니다.

반면, 느헤미야의 비전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방해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성벽 재건을 시도할 때 산발랏과 도비야, 게셈은 끊임없이 방해합니다. “네가 이걸 할 수 있겠느냐?”, “왕이 반역한다고 오해할 것이다”, “여우가 올라가도 무너질 성벽이다”라는 말로 두려움과 조롱을 심었습니다. 이들은 건설적인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난과 회의, 원망으로 공동체를 혼란케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와 사회 안에도 이런 원망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현실의 어려움을 지적하는 데에 익숙하고, 문제의 원인을 남 탓으로 돌리며 자신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비전이 없고, 기도가 없으며, 행동이 없습니다.

비전의 사람은 모든 것이 갖춰진 자리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너진 곳, 절망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시선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봅니다. 느헤미야는 아무것도 없는 자리에서, 기도와 말씀, 헌신과 리더십으로 성벽을 52일 만에 완공했습니다. 그의 비전은 단지 성벽 재건이 아니었습니다. 백성들의 신앙 회복, 공동체의 회복, 하나님과의 언약 회복이 그의 진짜 목표였습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무너짐 너머에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 속에서도 비전의 사람은 필요합니다. 무너진 신앙, 파괴된 가정, 약해진 교회를 보며 눈물로 기도하고, 다시 세우려는 사람들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사람입니까? 비전의 사람입니까, 원망의 사람입니까? 무너진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주저앉고 원망만 하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주의 뜻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려는 사람입니까? 하나님은 원망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언제나 기도하며, 믿음으로 꿈꾸고, 작은 것이라도 실천하려는 사람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 교회가, 우리의 가정이, 우리의 삶의 자리가 무너졌을지라도, 하나님은 그 속에서 비전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 한 사람입니다.

느헤미야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하게 하시리니, 그의 종들인 우리 일어나 건축하리라!”(느 2:20) 이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무너진 것을 보며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 다시 세우기 위해 기도하고 행동하는 사람,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공동체를 이끄는 사람이 됩시다. 우리 모두가 비전의 사람 되어, 무너진 곳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축복의 통로가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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