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담의 계보
- 정명훈 2020.1.7 조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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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창세기5 : 1 - 32 | 개역개정
-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 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먼저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3절을 보면 아담은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했다. 여기서 ‘형상(image)’이란 말은 ‘누군가를 원본으로 삼아 찍어냈다’는 의미가 있다. 따라서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모습을 닮게 창조되었다. 반면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모습을 닮게 태어났다. 물론 여기서 ‘닮았다’는 말은 외모가 닮았다는 말이 아니라 인격이 닮았다는 말이다. 즉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인격과 닮은 인격을 가진 존재로 창조되고 아담의 자손들은 아담의 인격과 닮은 인격을 갖고 태어난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과 ‘아담의 형상’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우선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범죄하기 이전의 완전했던 인격을 말한다. 반면 ‘아담의 형상’이란 죄에 의해 파괴되고 변형된 하나님의 형상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아담의 형상’이란 범죄로 인하여 타락한 죄인의 모습을 가리킨다. 사실 아담과 하와는 본래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는 바 그들의 인격 곧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후손을 낳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전인격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게 됨으로 인해 그들은 완전한 하나님의 인격을 닮은 후손을 생산하지 못하고 오직 파괴되고 변형된 하나님의 형상 곧 타락하고 부패한 인격을 가진 존재만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성경은 세상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다 같이 죄를 범한 죄인이라고 선포하고 있다(롬 3:10,23; 5:12). 그렇다. 아담 안에서 난 자는 누구나 다 전인격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한 죄인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스스로는 구원에 이를 만한 어떠한 선도 행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아담의 족보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낳고…죽었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실로 인생은 낳고 죽는 허무한 존재라는 의미다. 그것은 바로 죄를 범한 인생의 비극적인 운명을 잘 묘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을 때, 하나님과 동행할 때 그처럼 허무하고 비극적 운명도 극복이 가능하다.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의 승천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는가? 실로 하나님 안에 영생의 소망이 있다. 즉 인생이 하나님과 인격적 교제를 회복할 때 그저 낳고 죽는 허무를 극복하고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에녹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매순간 하나님을 우리 삶의 중심에 모시고 그분의 뜻에 귀를 기울이며 그분의 요구에 기쁘게 순종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소망 없던 아담의 후예가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다. 인간이 구원을 얻는 것은 자신의 능력이나 공로 때문이 절대 아니다. 그것은 오직 인간을 사랑하사 죄인을 위해 자기 독생자까지 아낌없이 내어 주신 하나님의 무조건적 은혜의 결과이다(요 3:16).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에 있어 하나님과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행위나 의를 자랑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다만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고 그러한 죄인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에게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기도)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master piece로 창조하셨지만, 우리의 죄로 인해 허무하게 인생을 마감할 비극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우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당신과 동행하는 자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당신과 동행하며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삶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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