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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숙한 헌신 | 정명훈 | 2024-06-0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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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늘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영적 고민을 하며 살고 있습니다. 특히, 한 해를 시작할 때라든지, 새로운 출발을 계획하고 있을 때 이런 고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왜, 이런 고민을 반복적으로 해야만 하는 것입니까? 어찌 보면 고민하지 않아도 될 문제를 사서 고민하고 있는 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까? 현재 우리의 영적인 신분 상태가 어떠하냐에 따라서 우리는 이 문제를 너무나도 쉽게 접근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을 내 구주로 영접한 자들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말씀처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라고 분명하게 제시하듯이 주님을 영접한 자는 이제 내 것을 내 것이라 하지 않으며 모든 소유권을 주님께 드린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그 분을 믿고 그 분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지? 에 대해서 왜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고민을 하였습니까? 그런 고민을 위해 소모한 에너지가 아깝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떻게 하면 더욱 더 주님을 위해서 살 수가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라는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 제 1문에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처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 아는 자라면 바로 그 분을 위해서 그 분의 영광과 그 분을 즐겁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결국 우리가 그 분께 온전한 헌신을 드릴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믿음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아브라함의 전 생애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온전히 헌신한 생애였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겁니다. 그가 처음 하나님을 알고 믿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너는, 네가 살고 있는 땅과, 네가 난 곳과, 너의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내가 보여주는 땅으로 가거라.”(창 12:1)고 명하셨는데, 이것은 헛된 우상숭배 신앙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 신앙을 가지라는 명령으로 이때에 아브라함은 즉각적으로 순종하며 따랐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무슨 종교나 신앙을 가졌던지 간에 선뜻 그것을 버리고 종교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헛된 미신과 우상종교를 즉각 포기했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는 우선 첫 번째 단계는 버릴 것을 버리는데서 시작됩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떠날 곳을 떠나지 않으면 헌신이 될 수 없어요. 사도 바울도 ”여러분은 지난날의 생활 방식대로 허망한 욕정을 따라 살다가 썩어 없어질 그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엡 4:22)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헌신적인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지난날의 생활 방식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에 진정한 헌신의 첫 걸음을 내디딜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헌신은 버릴 것을 과감히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죄악 된 소원과 의지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헌신을 하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바로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못하고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 무엇이라 생각합니까? 버리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그 달콤함에 빠져 진정 영원한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집착하시렵니까?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잠시 있다가 사라질 것에 목을 맬것인지, 아니면 영원한 것에 운명을 걸 것인지, 올바른 선택을 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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